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FIFA U-20 월드컵/대한민국 (문단 편집) === 8강 우루과이전 2:1 승 === ||<-3> [[1983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멕시코|[[파일:1983_FIFA_World_Youth_Championship.png|width=50]]]][br]'''{{{#000 1983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멕시코 8강전[br]1983. 06. 11. (토) 17:00 (UTC-6)}}}''' || ||<-3> '''{{{#fff 에스타디오 테크놀로히코 [[몬테레이|{{{#fff (멕시코 몬테레이)}}}]]}}}''' || ||<-3> '''{{{#000 주심: [[코스타리카|[[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width=30]]]] 카를로스 루이스 알파로}}}'''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8BB9F4 5%, #fff 5%)" [[파일:Uruguay AUF 1970.png|height=100px]]}}} ||<|2> '''{{{#000 {{{+5 1 : 2}}}[br]{{{-1 A.E.T.}}}}}}'''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30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fff 5%, #FF0000 5%)" [[파일:대한민국 국기.svg|height=5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fff 95%, #8BB9F4 95%)"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s-9.1.1|[[파일:우루과이 국기.svg|width=30]] {{{#000 '''우루과이'''}}}]]}}} ||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fff '''대한민국'''}}}]] || || '''71' 호르헤 마르티네스''' || '''득점''' || '''54', 104' [[신연호|{{{#000,#fff 신연호}}}]]''' || [youtube(5mqqLbB-sFA)] 8강 상대는 훗날 성인 대표팀의 천적이 되는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였다.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한국은 전반 내내 주도권을 잡고 우루과이를 가둬놓고 팼다. 결국 전반 종료 직전 [[페널티킥]]을 얻으며 경기를 쉽게 풀어가는가 싶었으나 노인우가 찬 볼이 골포스트를 맞고 튕겨 나온다. 자칫하면 팀 전체에게 맥이 빠질 수 있는 위기였으나 박종환은 하프타임 때 노인우에게 별다른 말 없이 그저 등을 토닥여 주었다고 하고[* '''박종환의 평소 성격을 감안하면 이건 믿기 힘든 일이다.''' 괜히 박종환이 빠따타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 덕인지 노인우는 후반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최전방으로 날카로운 패스를 배달하였고 이를 신연호가 마무리해 선취골을 뽑아냈다. 그러나 전반전에 상대를 몰아붙이며 많은 체력을 소모한 탓인지 득점 이후 한국은 수세에 몰렸고 골키퍼 이문영이 분투했지만 결국 후반전 25분에 동점골을 허용하였고 승부는 연장전에 돌입한다. 연장 전반 3분 우루과이에게 결정적 찬스를 내주었지만 루벤 소사[* 훗날 우루과이의 스타 플레이어로 '골의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은 선수다.]의 슈팅이 골대를 때리고 나왔고, 승리의 여신이 한국에게 미소를 지었는지 곧이어 신연호가 [[김종부]]의 크로스를 결승골로 연결한다. 결국 '''사상 최초로 FIFA가 주최한 세계 단위의 대회에서 4강에 진출하는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참고로 이 당시까지만 해도 올림픽 금메달 수상자가 [[양정모(레슬링)|양정모]] 딱 한 명이었고 성인 월드컵도 1954년 이래로 나가본 적이 없던 시절이니 아시아권에서나 스포츠 강국이었지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기에 국내에서 엄청난 화제거리가 되며 1990년대까지도 국내 축구 영광의 순간이라며 다뤘다. 지금이야 2002년 월드컵 4강 때문에 묻혀졌지만 1999년 전만 해도 한국 축구가 피파 주관 대회에서 거둔 가장 좋은 성적이라 늘 언론이나 방송에서 다룬 대회였다. '''4강의 기적'''이라며 한국 축구 최고의 영광이라고. 덕분에 1981년 이 대회 준우승을 거두며 아시아 최고 성적을 먼저 거둔 [[카타르]]의 성적은 상대적으로 한국에 묻혀졌다. 그러다 1999년 이 대회에서 일본이 준우승을 거두면서 한국 축구계는 일본도 준우승 한 걸 4강의 기적이니 뭐니 자뻑하지도 못하게 되었다고 충격을 받았고 언론이나 방송에서도 묻혀지게 되었다. 이후 2002 한일 월드컵 4강으로 다시 4강의 기적이란 말이 나오게 된 것. 이 경기는 한국 시간으로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는데 많은 국민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경기를 시청할 정도로 전국민적인 관심을 모았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